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
로그인회원가입사이트맵모바일웹
한사연소개 한사연동정 회원게시판 무엇이든물어보세요 복지자료실 역사박물관 한사연에바란다
  우리들의이야기 마음의쉼터 복지칼럼 복지뉴스 복지정책제안 근무지교류 만화방 도서소개
우리들의이야기
우리들의이야기
피해사례공유방(익명)
마음의쉼터
복지칼럼
복지뉴스
복지정책제안
근무지교류
만화방
도서소개
홈 > 회원게시판 > 복지칼럼
이름 제목 내용 검색
익산역과 광장문화
작성자
청학 채수훈 (2021-06-01 오전 8:23:43)
파일 1. 익산역과 광장문화(2021.5.24.).hwp (127KB)
 

익산역과 광장문화

 

광장이라 하면 공공의 목적을 위하여 여러 갈래의 길이 모일 수 있도록 넓게 만들어 놓은 마당이다. 또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어떤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비유적으로 일컫는다.


우리나라 광장은 근대철도와 도시화 속에서 두 갈래로 생성되었다.

먼저 철도역 광장이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세계 최초 산업혁명이 시작되며 철도가 건설되었다. 최초의 근대식 철도는 1830년에 개통된 리버풀-맨체스터 간 철도로서 승객?화물을 위한 공공 수송에 이용되었다. 철도는 산업혁명의 상징물이 되었고, 제국주의가 확대되면서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역사를 중심으로 광장이 생겨났고, 도시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최초 철도는 일제강점기인 1899년 개통된 경인선이다. 경성(서울)과 제물포(인천)를 잇는 철도로써 서울역과 광장이 들어섰다. 철도는 일본이 한반도 식민지 수탈과 병참 기지화를 위해 조선 전역에 거미줄처럼 건설되었다.


새로 생긴 주요 역 광장은 승객들이 기차를 이용하는 편익 목적보다 전쟁 인력 동원, 제국주의 궐기대회, 물자수송 등 국가 통치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그 후 기차역 광장은 시대 변화에 따라서 부침을 거듭해왔다. 일제강점기 때 천황폐하, 광복 때 자주독립, 이승만 때 멸공 통일, 한국전쟁 때 미국원조, 군사정권 때 좌익반대 그리고 문민정부 때부터 문화공연 만세를 외쳐 왔다.


다음으로 도시 광장이다. 포럼이 고대 로마의 공공집회 광장인포룸(forum)’에서 유래하여, 점차 광장에서 열리는 토론회를 의미하듯이 사람들이 모여서 무엇인가 상호교류를 꾀하는 곳이 광장이다. 근대 국가 탄생 후 대규모 광장이 조성되었다. 독일 히틀러 광장, 러시아 붉은 광장, 중국 천안문 광장, 북한 평양 김일성 광장 등이 그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도시 광장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짧아서 미처 발달하지 못했다. 태생적인 한계 때문인지 고대 아테네처럼 시민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의사결정 하는 주민자치 광장으로 성장하지 못하였다. 국가 정권의 동원된 행사만 허용되었고, 반정부 집회는 불허하였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광장은 여의도의 5.16 광장이다. 1970년대 광장을 만들면서 박정희가 직접 작명했다고 전해진다. 군인 출신답게 국군 위용 과시를 위한 군사 퍼레이드 장으로 이용되었다. 정치?종교 집회, 이산가족찾기, 시민 놀이공간, 문화 행사 등 시대 흐름에 따라서 그 용도가 다양한 모습으로 탈바꿈되었다. 이처럼 근대사회의 광장은 제국주의 국가가 태동하면서 정치적 행사를 위한 공간이 되었다.


익산의 중심 광장은 어디일까?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이리역(현 익산역)이 건설되면서 익산을 상징하는 광장이 생겨났다. 100여 년 동안 유일한 역 광장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전철을 밟아왔다. 일제강점기 때 국가총동원령 궐기대회, 제국 웅변대회, 해방 때 광복대회 이승만 정권 이후 반공 궐기대회, 국가선거 유세, 만남의 장소, 문화공연 장소 등으로 변모되어왔다.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시국 강연회, 선거유세와 19876월 민주항쟁 때 시민집회가 절정을 이루었다.


익산역은 역사적인 사건 때마다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해왔다. 광장 한쪽에는 3.1운동기념비를 비롯한 익산평화의소녀상, 4.19학생의거기념탑, 1950년 미군의이리폭격희생자위령비, 이리역폭발희생자추모탑 등이 세워져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현대까지 역사적 부침과 어두운 터널을 관통해 왔다. 이제 작은 역사박물관이라도 건립하여 재창조되었으면 한다.


1970년대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국민가수 나훈아의 노래 <고향역>의 배경지가 바로 익산역이다. 국민애창곡 1번 답게 노래비라도 세웠으면 문화품격이 높아질 것 같은데 안타깝다. 임종수 작사?작곡가와 가수 나훈아가 생존시 고향역 콘서트와 함께 추진하면 더할 나위 없겠다.


한여름 밤이면 역 광장에 시민들과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소주 한잔 기울이며 시국을 논하였고, 아침이슬, 연가 등을 소리높여 부르며 청춘을 발산하는 공간이었다. 광장에는 시계탑이 있었는데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로써 이정표 역할을 하였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시간에 맞추어 관계를 이어주는 추억이 아련한 곳이기도 했다. 소규모 버스킹 공연도 자주 개최하고, 시민들이 마음껏 자유롭게 문화를 향유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해 나갔으면 한다.


21세기 익산역은 미래 국제철도 시대에 대비하여 국제 역 광장으로 변모를 꾀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유라시아 대륙 시종역의 호남 거점 역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전 세계 국가 사람들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국제광장도 계획하여 그 꿈을 키워나가면 어떨까?

 

2021. 5. 24.

익산시 복지정책과

채수훈 맞춤형복지지원계장

 

익산 소통신문 칼럼(6월호)

 

 
답변하기 새글쓰기 목록보기
회원 의견(총0개)
 
의견쓰기